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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비즈니스: 호텔들의 향기 사용법

카지노 슬롯머신에도 향수 뿌리는 호텔들

5월 6일 오전 9시 37분, 서울 광화문 네거리의 포시즌스호텔을 찾았다. 햇살이 오전부터 뜨거웠다. 광화문 도로변과 호텔 로비를 연결하는 자동 회전문이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회전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회전문이 반쯤 돌아가자마자 산뜻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무 향과 꽃 향이 어우러져 회전문 저쪽 광화문 도로변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향기가 로비에 비치된 꽃과 나무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1층 로비 중앙은 천장까지 닿아있는 나무와 꽃으로 장식돼 있었고, 안쪽에도 보라색 수국과 스타티세 등 각종 생화가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덴마크의 플라워 아티스트 니콜라이 버그만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포시즌스호텔 로비의 향기는 생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호텔 직원은 “우리 호텔의 시그니처(그 회사에서 특별히 제작한 제품) 향” 이라고 했다. 특수 제작된 장치를 이용해 주기적으로 향수가 로비 곳곳에 뿌려지고 있었다. 로비 안쪽에서 부모님과 꽃구경을 하던 회사원 차모씨는 “다른 호텔보다 좀 더 고급스럽고 매력적인 향기인 것 같다” 고 말했다.

포시즌스호텔 로비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는 전통 한옥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한옥이 나무로 만들어진 목조건물인 것처럼 포시즌스호텔의 시그니처 향도 은은한 나무의 향기가 배합돼 있다. 소나무의 일종인 개잎갈나무에서 추출한 시더우드 향과 단향목에서 추출한 샌들우드 향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다. 다른 호텔들보다 좀 더 강한 시그니처 향을 사용하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포시즌스호텔은 서울과 한국의 이미지에 맞는 향을 개발해 유일한 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포시즌스호텔은 런던, 뉴욕, 파리 등 주요 도시별로 그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고유한 향을 개발해 사용한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의 1층 로비, 직원 옆에 호텔의 시그니처 향을 내는 향초가 놓여있다.

5월 8일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 반포동에 있는 JW메리어트호텔 1층 로비에 들어섰을 때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였다.

포시즌스호텔 보다는 덜 강렬했지만 로비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한 50대 남성은 “호텔을 자주 오가는 편인데 JW메리어트의 향기는 둔감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은하다.


포시즌스호텔의 향기는 중동 국가들에서 강렬한 향을 피우는 것을 연상 시킬 정도로 확연하게 느낄 수 있지만 이곳은 향의 정도가 훨씬 덜하다”고 했다. 그는 “너무 강렬한 향보다는 JW메리어트의 향이 오히려 더 편안하다” 고 말했다. JW메리어트는 미국 본사에 요청해 한국의 호텔에만 자체 제작한 향기를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았다. 세계 30개국 80개의 호텔에서 똑 같은 향기를 쓰는데 한국에만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춘 향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봄과 여름에는 무화과 향과 삼나무 향을 합쳐서, 가을과 겨울에는 파촐리 등 숲속에서 자라는 야생 풀잎 향을 무화과 향과 삼나무 향에 추가해서 사용하고 있다.

JW메리어트를 운영하는 신세계 그룹이 ‘한국 고객의 취향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해 미국 본사와 수개월간 협의를 거친 결과다. 미국 본사는 통일성을 중시해서 처음에는 서울 반포동의 호텔에만 고유의 향을 사용하는 데 부정적이었지만 결국 요청을 받아들였다. 동대문에 위치한 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호텔(동승그룹 운영)은 별도의 향을 쓰지 않고 미국 본사와 동일한 향을 사용한다.

자체 브랜드 개발로 상품화까지

고유한 향기를 호텔 로비나 객실에 뿌려 놓는 곳은 포시즌스호텔, JW메리어트호텔 뿐만 아니다. 더플라자,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이하 워커힐), 웨스틴조선 등 국내 유명 호텔 대부분이 고유의 향기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후각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등 다른 감각에 비해 1만배 이상 민감하고 정확하며 기억을 주관하는 대뇌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한번 맡은 향기를 쉽게 잊지 못하는데, 호텔들이 이렇게 고객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향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호텔 중에 시그니처 향기를 가장 먼저 사용한 곳은 더 플라자 호텔이다. 2010년부터 숲 속을 연상시키는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추출한 향을 호텔 전 객실과 로비, 직원 향수 등으로 사용하며 고객에게 일관된 향을 제공하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시그니처 향기를 ‘P컬렉션’ 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만들어 디퓨저 등 관련 상품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에서도 2017년부터 시그니처 향을 개발해 로비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워커힐의 시그니처 향은 오렌지와 재스민 등으로 배합된 향기다. 워커힐 관계자는 “주변 아차산 산책로의 자연경관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며 “우리 어린 새벽 숲, 촉촉한 땅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이끼 냄새와 뿌리의 잔향이 오감을 일깨워주는 것이 특징인 향기”라고 했다.

파라다이스시티도 글로벌 향기 마케팅 그룹 에어 아로마(Air Aroma)와 함께 시그니처 향인 ‘센트 오브 파라다이스(Scent of Paradise)’ 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이 향기는 시트러스(감귤류) 향과 나무 향, 버베나(마편초과의 식물)향, 민트 향이 어우러져 있다.

더 플라자, JW메리어트, 워커힐 호텔에서 사용하고 있는 디퓨저.

차(茶)의 향기를 시그니처 향으로 사용하는 호텔도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 등 웨스틴 브랜드의 전 세계 호텔들은 백차(White Tea) 향에 오키드(난초) 향을 섞어 시그니처 향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향기를 이용한 마케팅이 객실이나 로비 등의 지역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호텔에서는 카지노 등 유흥시설에도 향기를 활용하고 있다.

MGM마카오, 윈(Wynn)마카오 등 중국 마카오에 위치한 카지노호텔은 계절별로 자체 주문한 향수를 카지노에 뿌리고 있다. 국내도 제주 롯데호텔 안에 위치한 LT카지노는 향기 마케팅 기업 센트온과 함께 개발한 자체 시그니처 향기 브랜드 ‘엘 우드(L Wood)’를 카지노의 슬롯머신에 뿌리고 있다. 엘 우드는 숲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향기로 배합됐다. 카지노 고객들은 풀 냄새, 꽃향기, 나무 향 등을 맡으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카지노를 즐길 수 있다. 마카오 스타월드 카지노의 조사에 따르면 카지노 방문객들은 향수를 뿌리지 않은 슬롯머신보다 향수를 뿌린 슬롯머신에 30%이상 더 오래 앉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수연 JW메리어트호텔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고급스러운 경험이 예전에는 (인테리어 등) 시각이나 (음식의 맛 등) 미각에 집중돼 왔다”면서 “이제는 호텔들이 후각까지 만족시키기 위해 고급스러운 향기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 인터뷰] 유정연 센트온 대표

“향기가 기업 브랜드, 향(香)테리어 시대 온다”  _ 정해용 기자 

유정연 센트온 대표

롯데호텔, JW메리어트호텔, 인터콘티넨탈호텔, 하얏트 리젠시 제주, 포시즌스 호텔 등 국내 유명 호텔들이 고유한 향기를 개발하기 위해 찾아가는 기업이 있다. 향기 마케팅 전문기업 센트온이다. 센트온은 향기가 마케팅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6년 설립돼 20년이 넘는 동안 향기 마케팅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센트온의 고객 회사는 호텔뿐이 아니다. 강원랜드 등 카지노는 물론 몽클레르, 태그호이어, 지오다노, 언더아머 등 패션 기업과 삼성증권 등 금융회사도 센트온의 자문을 받아 자체 시그니처 향기를 만든다. 국회도서관과 헌법재판소도 고객 회사 명단에 포함돼 있다. 센트온이 2000여 개의 향 라이브러리를 보유한 향기 마케팅 전문기업이기 때문이다.

센트온은 ‘센트 마스터’라는 브랜드로 조향사(향을 만드는 사람)을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전국에 120여 명의 센트 마스터가 조향사로 활동하고 있다. 

 센트온의 유정연 대표는 CJ제일제당(신선, 제약 부문 마케팅 상무), 글로벌 제약회사 바슈롬(Bausch&Lomb) 코리아를 거쳐 자동차관리용품 기업 불스원 부사장을 지낸 마케팅 전문가다. ‘이코노미조선’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마케팅 분야의 전문성을 접목시켜 센트온을 이끄는 유 대표를 인터뷰 했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제 기업에 향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며 향기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공간을 연출할 때도 향기를 접목시키는 ‘향(香)테리어’가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향기 산업시장 규모와 성장 추세는 어떤가

 “글로벌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발표에 따르면 세계 향기 산업의 시장 규모는 올해 355억달러(약 4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229억달러(약 27조원)에서 2017년 266억 달러(약 31조원)규모로 성장했다. 5년 만에 시장규모가 17%이상 늘어난 것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통계가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산한 결과를 보면 현재 국내 향기 시장은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국내에서 3주원대의 향기 시장의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향기 산업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향기 산업에 돈이 몰리는 것은 향기가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향기는 단숨에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힘이다. 좋은 향기는 사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사람은 향기를 통해 자신감도 업고 위로도 받을 수 있다.

 이런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나의 브랜드, 나의 영업장소가 어떤 향기로 기억될 것인지를 신중하게 생긱해 봐야한다. 기업들이 이런 향기의 가치를 점점 인식하게 됐고 더 많은 돈을 향기에 투자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어떤 향기로 기억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일반적으로 고객이 주로 시각, 청각, 촉각, 미각을 통해서 브랜드나 제품 그리고 서비스를 인지한다고 생각하지만, 후각이야말로 브랜드나 제품 그리고 서비스를 인지하고 기억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후각은 오감(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중 다른 감각에 비해 1만 배 이상 민감하고 정확해 사람들이 매일 느끼는 감정의 75%가 후각 때문이라는 연구도 있다. 그만큼 감정이나 기억력, 집중력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제 기업에 향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다.”

향기 마케팅이 주로 사용되는 곳은 어디인가.

“예전에는 호텔이나 대형 쇼핑몰 등에서 주로 향기 마케팅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빌딩이나 영화관, 자동차 전시장, 패션과 뷰티 브랜드 매장 등 점점 다양한 공간으로 향기 마케팅이 확장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뮤지컬, 콘서트,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공간에서 향기를 접목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향기 마케팅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공간 연출에서 향을 하나의 인테리어로 사용하는 ‘향테리어’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보면 된다.”   

향기 마케팅과 향기 산업이 확장하면 조향사도 증가할 같다. 조향사의 업무는 무엇인가.

 “조향사는 두 가지 일을 한다. 첫 번째는 고객 회사의 요구가 없어도 전혀 새로운 향기를 만드는 일이다. 창의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또 다른 일은 고객 회사의 요구에 맞춘 시그니처 향기는 만드는 일이다. 시그니처 향기를 만들 때는 원하는 방향을 알기 위해 고객 회사와 많은 대화를 진행해야 하고 관련 자료조사도 많이 해야 한다.

 향을 통해 고객 회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 콘셉트 등을 고려해 고객 회사의 브랜드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향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센트온에서 조향사가 되거나 향기 마케팅을 하려는 사람을 지원하기도 하나.

 “조향사는 아직 국내외에 공인된 자격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센트온에서는 자체적으로 향기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르쳐 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향기에 대한 기본 지식을 교육하고 향기 관련 기기의 종류와 설치 방법을 알려준다. 이런 조형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센트 마스터’로 불리는데 센트 마스터가 되면 보통 센트온의 브랜드를 빌려 프랜차이즈 형태로 향기 마케팅 서비스 사업을 한다. 현재 전국에 120여 명의 센트 마스터들이 향기 마케팅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미조선]